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루쉰(魯迅)과 루쉰학(魯迅學)

루쉰은 현대중국의 세계적 대문호로 그의 문학은 봉건사회의 잠들어 있는 중국의 국민성을 개조한 선구자

루쉰은 1881년 저장성(浙江省) 사오싱(紹興)의 전통적인 사대부집안에서 태어났다. 1893년 할아버지 저우제푸(周介孚, 1838〜1904)가 과거시험 부정사건에 연루되어 투옥되고, 그로 인해 아버지 저우보이(周伯宜, 1861〜1896)가 병을 얻어 사망하면서 집안이 몰락했다. 그는 1898년 난징(南京)에 유학하면서 신학문을 접했다. 1902년에 국비장학생으로 일본 유학길에 올랐다. 센다이의학전문학교(仙臺醫學專門學校)에서 의학을 공부하던 중에 이른바 환등기 사건을 거쳐 문학의 길로 들었으며, 1936년 10월 19일 사망할 때까지 명실 공히 현대문단을 이끈 인물이었다. 그는 절망에 반항한, 문학이란 무기를 들고 중국사회의 개혁과 젊은이들의 각성을 일깨운 정신계의 전사였다. 그는 1901년에 고시 7언절구 「자화상(自題小像)」을 썼고, 1903년 7월에 「스파르타의 혼(斯巴達之魂)」을 써서 도쿄에서 발간하는 월간잡지 『저장의 물결(浙江潮)』 제5기와 제9기에 발표

했다. 1911년에 문언소설 「옛일을 회상하며(懷舊)」를 쓴 뒤에, 1918년 중국 최초의 현대백화소설 「광인일기(狂人日記)」를 발표하여 중국 사회를 뒤흔들었고, 이후 소설과 잡문 창작과 병행해 세계의 진보적인 작가와 작품을 소개 번역했다. 또한 당대 문예 이론가, 지식인들과의 논전을 통해서 ‘쇠로 된 방(鐵獄)’을 타파하고자 했다. 그의 창작생애는 크게 일본 유학시기(1902〜1909)와 집필초기(1909〜1912), 베이징(北京)시기(1912〜1927), 상하이(上海)시기(1927〜1936)로 구분할 수 있는데, 각 시기별로 소설, 잡문, 번역 등 작품과 문학관(文學觀)을 비롯해 교육, 아동문학, 사상철학 및 윤리, 미술 등을 망라하여 다방면에서 연구가 진행되고 있고 성과 또한 풍성하다.

루쉰 연구회

루쉰 연구의 확장성 추구

루쉰연구 전문단체는 중국루쉰연구회(中國魯迅硏究會, 1979), 사오싱루쉰연구학회(紹興魯迅硏究學會), 사오싱루쉰기념관(紹興魯迅紀念館), 상하이루쉰기념관(上海魯迅紀念館), 베이징루쉰박물관(北京魯迅博物館, 1956) 등이 있고, 또 루쉰의 후손인 저우링페이(周令飛, 1953〜 )가 중국문학예술계연합회 산하에 루쉰문화기금회(魯迅文化基金會)를 2012년 9월 25일에 창립하여, 세계인에게 ‘인간 루쉰 알리기’에 박차를 가했다.

루쉰전집

루쉰 문학세계의 완결판

『루쉰전집』은 상하이에서 1938년에 ‘루쉰전집출판사(魯迅全集出版社)’가 창립되어 전10권을 출판한 것이 효시이다. 이후 인민문학출판사가 1973년에 전20권, 1980년에 전16권, 2005년에 전18권을 출판했고, 루쉰전집편집위원회(『魯迅全集』編委會)가 편집하여 2012년에 베이징 광명일보출판사(光明日報出版社)에서 전20권을 출판했다.

루쉰연구의 기념비적인 ‘중국루쉰연구명가정선집(中國魯迅硏究名家精選集)’ 『황야의 나그네: 루쉰 정신세계 시탐(荒野過客: 魯迅精神世界探論)』(쑨위스孫玉石), 『루쉰-문화 혈통의 환원(魯迅文化血脈還原)』(양이楊義), 『중국은 루쉰이 필요하다(中國需要魯迅)』(왕푸런王富仁), 『우리 곁의 루쉰(活着的魯迅)』(쳰리췬錢理群), 『루쉰의 문학세계에서의 몽유(魯海夢遊)』(장멍양張夢陽), 『고독한 이의 외침(孤獨者的吶喊)』(황젠黃健), 『루쉰과 현대 중국(魯迅與現代中國)』(쑨위孫郁), 『루쉰의 향토세계(魯迅的鄕土世界)』(양젠룽楊劍龍), 『다문화 시야 속의 루쉰(跨文化視野中的魯迅)』(가오쉬둥高旭東), 『루쉰에게서 멀어질수록 우리는 평범해진다(遠離魯迅讓我們變得平庸)』(장푸구이張福貴) 등 전10권이 2013년 안후이대학출판사安徽大學出版社(허페이合肥)에서 출판됐다.

루쉰 아큐정전 영화(중국어+한국어 자막지원)

루쉰문학상

당대 중국 최고의 권위적인 문학상

현재 루쉰연구 학술논문을 전적으로 게재하는 잡지 간행물은 『루쉰연구(魯迅硏究)』, 『루쉰연구월간(魯迅硏究月刊)』, 『상하이루쉰연구소계간(上海魯迅硏究所季刊)』, 『민족혼(民族魂)』, 『사오싱루쉰연구(紹興魯迅硏究)』 『루쉰연구자료(魯迅硏究資料)』, 『상하이루쉰연구(上海魯迅硏究)』 등이 있으며, 중국작가협회가 주관하여 1997년부터 격년으로 루쉰문학상을 수여하고 있다.

한국에서의 루쉰

동아시아 범위로 영향력을 확장해가는 루쉰

한국에서 루쉰은 1930년 1월 4일 『조선일보』(3면)에 白華가 번역한 「阿Q正傳」의 序와 第一篇(章)이 실렸고, 丁來東(1903〜1985)이 1930년 4월 9일 『조선일보』(4면)에 「『阿Q正傳』을 읽고(一)」이란 서평을 게재했다. 1932년 『東方評論』의 牛山學人이란 필명으로 실린 「中國 新興文學의 “阿Q”時代와 魯迅」이 아마도 비교적 초기에 루쉰의 문학작품을 소개한 글일 것이다. 丁來東, 白華(梁建植, 1889〜1944), 李陸史(1904〜1944) 등은 한국에서의 루쉰연구 1세대들이다. 한국의 중국 현대문학 수용과 연구 속에서 학술논문이 가장 많은 작가는 루쉰이며, 거의 모든 영역을 망라하여 연구되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1961년 金喆洙를 시작으로 1970년대에 李玲子, 1980년대에 金明壕, 박길장, 金河林 등이 뒤를 이었고, 그린비출판사에서 2001년부터 한국의 노신전문연구가들로 번역진을 구성하여 ‘루쉰전집번역위원회’ 명의로 『루쉰전집』을 출판하고 있다. 2017년 최종 루쉰전집 완역이라는 성과를 이룩하였다.

루쉰에 대한 평가

세기말 전환기에 일어난 중국 지식인 사회의 루쉰 비판

 

사회주의 중국이 수립된 이후 루쉰(魯迅:1881-1936)은 마오쩌둥과 더불어 신성불가침의 존재였다. 특히 문화대혁명 때(1966-76)는 더욱 그러했다. 루쉰을 공자와 비견할만한 현대 중국의 성인이라고 평한 마오쩌둥의 언급에 힘입어 마오쩌둥 사회주의 시대(1949-1976)에 루쉰은 문학 차원을 넘어 정치적 영웅이었다. 마오쩌둥 시대가 종결되고 시작된 1980년대 개혁개방 시기에 ‘루쉰 자신으로 돌아가자’라든가, ‘인간 루쉰’이라는 구호가 루쉰 연구에서 유행한 것을 보더라도 마오쩌둥 시대에 루쉰이 얼마나 정치적 목적을 위해 인간을 넘어 신과 같은 대접을 받았는지를 말해준다. 개혁개방 이후 중국에서 루쉰 연구는 정치적 목적을 위해 왜곡된 루쉰이 아니라 원래의 루쉰의 면모를 회복시키려고 하였다. 마오쩌둥 시대에는 루쉰과 그의 문학의 가치를 마오쩌둥 시대 사회주의 이념에 비추어 해석하는 가운데 루쉰을 계급투쟁에 충실한 전투적 사회주의자로 평가하였다. 하지만 개혁개방이 시작되고 현대화가 국가 목표로 설정된 1980년대에 루쉰과 그의 문학은 계몽주의라는 차원에서 재해석되었다. 두 시대가 루쉰을 보는 시각과 평가 기준은 크게 달랐지만, 루쉰과 그의 문학의 절대적 권위와 가치, 신화를 인정한 점은 동일했다. 단지 전투적 사회주의와 계몽주의라는 루쉰을 재는 잣대가 달랐을 뿐이인 것이다.

그런데 1990년대 말과 2000년대 초반에 루쉰과 그의 문학의 절대적 권위가 도전받는 현상이 나타났다. 루쉰이라는 사람과 루쉰 문학, 루쉰 사상 등 전반에 걸쳐서 그 절대적 권위와 가치, 신화를 부정하는 현상이 폭넓게 벌어지고, 이로 인해 논쟁이 벌어졌다. 루쉰의 문학을 가장 혹평하면서 논쟁을 촉발시킨 사람은 유명 소설가인 왕수어(王朔)였다. 그는 루쉰의 소설이 문학적 수준이 높지 않다고 비판하였다. 루쉰 소설은 지나치게 개념화되어 소설으로서는 실패하였다고 비판하면서, 루쉰의 대표작인 「광인일기(狂人日記)」와 「아큐정전(阿Q正傳)」이 대표적으로 그렇다고 지적하였다. 심지어 그는 「작은 일 하나(一件小事)」와 같은 소설은 초등학생 산문 같다고 혹평하기도 했고, 고사신편(故事新編)에 수록된 작품은 장난 수준이라고 비판했다.

그런가하면, 루쉰이 그의 소설과 산문에서 중국 국민성을 비판한 것을 두고서도 비판적인 지적이 나왔다. 루쉰이 중국 민족성을 규정하는 시각이 일종의 오리엔탈리즘(Orientalism)에 포로가 된 때문이라면서 이를 지적 식민주의의 일환이라고 비판한 것이다. 루쉰은 「아큐정전」을 비롯한 소설에서는 물론이고 여러 산문에서 중국 민족성의 부정적인 모습을 신랄하게 파헤쳤고, 그의 중국 민족성 비판은 루쉰 문학의 중요한 개성이다. 그런데 1990년대 중반부터 중국 지식인 사회에 오리엔탈리즘과 탈식민주의 담론이 유행하면서, 이들 이론에 경도된 지식인들이 이런 차원의 루쉰 비판에 앞장섰다. 이들은 루쉰이 중국 민족성을 보는 시각이 서구 선교사들이 중국 민족성을 규정한 것에 영향을 받았으며, 루쉰은 중국 내부의 시각이 아니라 서구인들이 중국을 지배하기 위해서 만들어 낸, 주로 부정적 특징 위주로 구성된 중국 민족성을 받아들였다고 비판한 것이다. 1990년대 중국 지식인 사회에 유행한 탈식민주의는 중국 지식인들이 그동안 서구 근대성을 이상으로 설정한 가운데 중국적인 것, 즉 중화성을 버리고 서구적인 것과 서구 근대성을 추구하면서 중국이 스스로 식민화 되었다고 비판하는 지적 태도로서, 일종의 문화 민족주의 혹은 문화 보수주의 색채를 지녔다. 이런 시각에 따라 이들은 루쉰이 중국 사회와 중국인의 기질, 중국인의 사유 습관 등, 이른바 중국적인 것을 신랄하게 비판한 것을 서구 중심주의 시각에서 나온 것으로 보고서 비판한 것이다. 루쉰이 중국 민중의 노예성을 비판한 것이나 중국문화의 어둡고 낙후된 측면을 비판한 것을 두고 문화 민족주의, 문화 보수주의 차원에서 비판한 것이다.

중국이 시장경제를 채택하면서 중국 지식인 사회에서 세를 넓혀 가던 자유주의 지식인들 역시 루쉰 비판에 가담하였다. 이들은 루쉰이 중국 현대 지식인 사회의 대표적인 지식인으로 추앙받는 것을 비판하면서 좌파에 경도되었던 루쉰 보다는 자유주의 지식인의 상징인 후스(호적)를 중국 지식인의 모범으로 삼아야 한다고 주장하였다. 루쉰은 자유주의 지식인과 많은 논쟁을 벌였고, 이들을 비판하기도 했는데, 1990년대 세력을 확대해 가던 자유주의 지식인들은 루쉰이 자신과 다른 가치와 사상을 지닌 사람을 포용하지 않은 점, 악에 대한 철저한 응징과 보복을 주장한 점, 혁명을 추종하면서 현실을 극단적으로 부정한 점 등을 비판하면서, 중국은 이제 루쉰과 같은 과격한 극단주의를 넘어서서 이제는 혁명보다는 개량이 필요하고 자유주의가 확대되어야 한다고 주장한 것이다.

중국에서 루쉰은 현대 중국을 대표하는 국민작가다. 이로 인해 루쉰을 신화 속에 두고 해석하는 일이 종종 벌어진다. 그런가하면 루쉰이라는 절대 권위를 정치적으로 이용하기도 한다. 1990년대 말과 2000년대 초반 루쉰에 대한 비판을 포함하여 루쉰 평가를 두고 다양한 논의가 벌어진 것은, 일부 부적절한 평가도 있었지만, 루쉰을 신화 속에서 구출하여 실사구시 차원에서 새롭게 루쉰을 읽고, 연구할 수 있는 계기를 제공한 것은 분명하다.

중국의 살아있는 민족혼 루쉰

시대와 공간을 초월하는 루쉰 문학의 영향력

루쉰연구의 성과는 루쉰과 ‘루쉰학(魯迅學)’의 위상을 보여준다. 루쉰연구가인 장멍양은 루쉰의 문학세계를 ‘魯海’라는 말로 농축시켰다. 루쉰의 창작활동은 1900년대부터 1936년까지 시간적으로 길지 않지만, 그의 영향력과 생명력은 지금까지 이어졌고 또 앞으로도 계속 재해석되고 재생산될 것이다.

루쉰 문학세계(중한자막)

아Q정전(루쉰) 오디오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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