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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대경극 제전궈(节振国)

명칭: 현대경극 제전궈(节振国) 1958

공연단: 탕산시경극단(唐山市京剧团)

각본: 탕산시 경극단 제권궈(唐山市京剧团《节振国》)

출연진: 마잔밍(马占明), 짱원중(臧文忠), 자오옌(赵燕), 바이사오화(白少华)

극본명칭: 경극 제전궈 극본(京剧《节振国》剧本)

편집: 탕산경극단(唐山京剧团)

출판년도: 1960년 4월

출판사: 백화문예출판사(百花文艺出版社)

연혁:

제전궈(节振国)는 1940년 8월 1일 진좡전투(金庄战斗) 중에 불행하게 희생당한 항일영웅이다. 그는 중상을 입은 일본군 두 명을 살려주었는데, 그 가운데 한 명이 갑자기 제전궈를 향해 방아쇠를 당겼다. 불행히도 제전궈는 가슴에 총알을 맞고 그 자리에서 쓰러졌다.

제전궈의 사적을 바탕으로 현대경극 〈제전궈(节振国)〉가 창작된 것은 1949년 초로 거슬러 올라가야 한다. 당시 지둥구(冀东区) 당위원회 선전부 부장 창다(张达)의 지시에 따라 지둥문공단(冀东文工团)의 우란(吴岚) 등이 자료를 수집했고, 카이치자오밍좡탄광(开滦赵各庄矿)에 가서 가극(歌剧) 〈제전궈〉를 창작했다.

중화인민공화국 성립 이후에 작가 왕훠(王火)는 항일민족영웅 제전궈를 원형으로 삼아 카이치 항일파업투쟁과 지둥 군민의 항일투쟁의 사적을 제재로 삼아 연이어 중편소설 〈진실한 충심(赤胆忠心)〉과 장편소설 《피로 물든 세월——제전궈 전기(血染春秋——节振国传奇)》(第四届茅盾文学奖获奖) 등을 창작했다.

1957년 11월, 류탄푸(刘谈夫)와 공동 창작으로 중편소설 〈진실한 충심(赤胆忠心)〉을 노동자출판사(工人出版社)에서 출판했다.

1958년 12월, 탕산시경극단(唐山市京剧团) 극작가 위잉(于英)이 여러 차례 카이치자오밍좡탄광으로 가서 생활을 체험하며 소재를 찾으면서 탄광클럽의 여러 동지들과 협조해서, 탕산경극단(唐山京剧团)이 집체창작해서 현대경극 극본 〈제전궈〉를 창작했다.

1959년 초, 리허설공연 이후에 많은 관객의 환호를 받았고, 특히 카이치탄광의 광부들의 뜨거운 환호를 받았다.

탕산시경극단이 당시 톈진시(天津市)로 가서 건국10주년 경축을 위한 공연에 참여해서 사회 각계의 관심을 받았다.

1963년, 지난 5년 동안의 경험을 바탕으로 탕산시경극단이 경극 〈제전궈〉를 여러 차례 수정해나갔고, 또 체계적인 문예이론과 연기지식을 갖고 풍부한 무대경험을 가졌으며 경극의 창법과 음악에 대해 노련한 원로 예술가 등을 영입해 ‘경극 제전궈 예술창작팀(京剧《节振国》艺术创作班子)’을 조직했다. 집행감독에 장셴유(张先猷), 감독에 쑨밍쿤(孙鸣昆), 런시춘(任喜春), 왕창산(王长山), 위잉(于英), 쉬룽쿠이(徐荣奎), 링윈샤오(凌云霄) 등이 있고, 음악설계에 쉬룽쿠이, 한시(韩溪), 런시춘(任喜春), 루구이허(卢贵和), 충쑹치(崇松启), 왕주산(王久山) 등, 미술디자인에 마푸칭(马福庆), 궁리밍(龚礼铬), 왕밍시(王明喜), 류싱쉐(刘兴学) 등이 맡았다. 장하이타오(张海涛), 왕창산(王长山) 등이 출연했다.

1964년 4월, 탕산시경극단이 집체창작한 현대경극 〈제전궈〉는 톈진에서 개최한 ‘허베이성 현대제재 경극 시연대회(河北省现代题材京剧观摩大会)’에 참가했고 중앙선전부의 긍정을 받아 허베이성을 대표해 전국 경극 현대극 시연대회에 참가할 수 있게 됐다.

1964년 6월 5일-7월 31일, 탕산시경극단이 창작한 현대경극 〈제전궈〉이 제1회 전국 경극 현대극 시연대회에 참가했다. 영웅의 사적, 노련한 연기로 당의 일치된 호평을 얻었으며, 주더(朱德), 탄전린(谭震林), 우란푸(乌兰夫), 루딩이(陆定一), 보이보(薄一波), 덩쯔후이(邓子恢), 궈모뤄(郭沫若), 황옌페이(黄炎培) 등과 이전에 지둥지역에서 생활했던 리추리(李楚离), 리윈창(李运昌), 류한성(刘汉生), 리중취안(李中权) 등이 모두 현대경극 〈제전궈〉를 관람했다.

1965년, 수정과 발전을 거쳐서 창춘영화제작소(长春电影制片厂)에서 칼라필름으로 제작했다. 위옌푸(于彦夫), 쩡웨이즈(曾未之)가 메가폰을 잡고 창법설계는 쉬룽쿠이가 맡고, 제전궈 역에는 장하이타오(张海涛)가 연기하고 쉬룽쿠이가 더빙했다. 이것은 최초로 더빙한 영상일 것이다.

1965년 9월, 영화 〈제전궈〉가 항일전쟁 및 제2차 세계재전의 파시스트에 대한 승리20주년 기념영화로 상영되어 많은 호평을 받았다. 각지의 경극단들도 현대경극 〈제전궈〉를 배워서 중국경극원(中国京剧院)의 리허쩡(李和曾), 장춘화(张春华) 등도 공연에 참가했지만, 문화대혁명이 시작되면서 〈제전궈〉 역시 찬밥을 먹었다.

1976년 3월 8일, 여성의 날(妇女节)에 영화 세 편이 상영됐다. 다시 제작한 〈젊은 세대(年青的一代)〉, 새로 찍은 〈폭풍우 몰아치기 전에(雷雨之前)〉 그리고 〈제전궈〉가 재상연됐다. 마오쩌둥이 영화 〈제전궈〉를 관람한 뒤에 긍정하고 새로이 방영하도록 지시를 했고, 또 베이징의 극단에게도 공연하도록 지시했다.

1976년 7월 28일, 탕산에 강력한 지진이 발생했고, 탕산시경극단의 인명피해도 대단히 컸다. 중국희곡대학(中国戏曲学院), 베이징희곡학교(北京戏校), 허베이성예술학교(河北省艺术学校) 등에서 우수한 학생 10명을 선발해서 탕산경극단의 제1선으로 보내 주력 연기자를 보충했다.

1977년 2월 28일, 탕산시경극단이 새로이 현대경극 〈제전궈〉를 리허설한 뒤에, 중국공산당 창당80주년 경축행사를 탕산재난지역의 인민을 위한 위문공연으로 탕산에서 개최할 때 현대경극 〈제전궈〉를 공연했다.

2005년, 항일전쟁 승리60주년 기념을 위해 탕산경극단이 새로운 진용으로 〈제전궈〉를 발전시켜 공연했다.

 

Last Update: 9월 2, 2019  

9월 2, 2019   89    Photos사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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